3화. 지문 없는 아이

2026년 5월 18일 월요일, '잼이야기' 카테고리에 게시된 글입니다. 제목 : 3화. 지문 없는 아이...

돈을 벌겠다고 서울로 갔던 아버지가 나머지 가족들을 불러들인 것은 

제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어요. 

정든 산촌을 떠나 이삿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짐을 들고

우리 가족이 내린 곳은 청량리역이었어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제손에는 책가방도 보자기도 없었어요.

유일한 짐은 둘째 형의 자전거를 고쳐주던 스페너와 펜치가 든 공구통이 전부였답니다.

앞으론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죠.

중학교 대신 다니기 시작한 곳은 목걸이를 만드는 작은 공장이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납땜하는 일을 배웠지요. 꼬박 열 두시간 연탄 화덕을 껴안고

납 연기를 맡고 있자면 공장 안은 이상한 나라에 빠져 들어가는 엘리스처럼

빙글빙글 돌 때가 많았답니다.

그러나 그 일도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 

3개월이나 밀린 월급을 주겠다고 한 날 사장이 야반도주를 했거든요.

어찌나 분한지 폭포 같은 울음을 터뜨리는 저를 품에 안고 어머니는 

등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죠.

“괘안타 다 잘 될끼다. 니는 틀림없이 잘 된다.”

옛날에 제 얼굴을 보고 점바치가 했다는 말을 어머니는 마치 자신에게 하듯

저에게 주문처럼 되뇌이셨어요. 

목걸이 공장에 이어 이번엔 제대로 된 회사라며 아버지가 데리고 간 곳은 

고무기판을 만드는 공장이었어요.

영세해서 나이를 따지지 않던 목걸이 공장과는 달리 

이 곳은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했어요.

취업 연령 미달인 저는 앞집 형의 이름을 빌려서 취직을 했답니다.

이곳에서 저는 연마반에 배치되었어요. 하루종일 검은 고무가루를 

가득 뒤집어쓰고 공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밤까마귀들이 놀려대는 것 같았지요.

우리보다 더 새까만 아이가 걸어간다구요. 연마기는 고무만 간 것은 아니에요.

소년공들의 손가락도 야멸차게 가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지문 없는 아이들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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