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공장 생활이 모두 힘든 것은 아니었어요.
고무 공장에선 소년공들에게 자주 잔업을 시켰는데 그걸 하면 라면 하나를 줬거든요.
다른 소년공 친구들은 야근을 하며 스프를 뿌려서 먹는 생라면을 즐겼지만
저는 그걸 아껴뒀다 집으로 가져 왔어요. 동생들과 함께 끓여 먹으려구요.
동생들은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그 모습 때문에 저는
야근과 철야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어요.
게다가 저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종일 시장에서 유료 화장실을 지키며 청소를 하고 휴지를 파는 어머니를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참고 다녔던 고무공장은 어머니를 위해 그만두어야 했답니다.
매일같이 손가락 지문을 갈아대던 연마기는 결국 제 손가락을 통째로 짓눌러 버렸거든요.
남의 이름으로 다니던 어린 소년공이 산재처리 같은 걸 알 리가 있었겠어요.
오히려 개미 눈물 같은 일당이라도 받기 위해 한동안 깁스를 한 채
출근을 하고 철야까지 하는 오기를 부렸죠.
근데 그런 저를 한밤중에 마중 나오던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던지…..
더 이상 어머니 애간장을 태우게 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다음에 옮겨 간 곳은 수학여행 때 처음 먹어 본 아이스께끼를 가득 담는 그런 냉장고 만드는 공장이었어요.
거기서 저는 함석판을 접고 자르는 일을 했어요.
빙과 냉장고에서 누군가가 달콤한 아이스께끼를 써낼 때 우리 소년공들은 고참에게
빳따를 맞았답니다. 불량을 내지 않기 위해 군기를 잡는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함석판 날이 날아와 제 손등을 깊게 그었을 때,
또 빳따를 맞을까봐 아무 말 없이 작업장에 놓인 빨간 약을 바르고
런닝 셔츠로 상처를 누른 채 피가 멎길 기다리며 서성였던 그 날,
공장 마당에서 본 담장 너머 산등성이에 눈부시게 핀 진달래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에요.
빳따를 덜 맞아서 사고가 난 게 아니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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