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밖을 나갈 수 없었던 소년공에게 봄꽃보다 더 눈부셨던 건 교복을 입은 또래 아이들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우리 공장에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가 있는 거에요.
일을 하면서도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수 있다니……
저는 당장 아버지에게 그 친구가 다니는 야간 공민학교엘 가고 싶다고 했죠.
그러나 허황된 생각말라고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도시로 가족을 불러 모은 아버지는 전에 없이 야멸차지셨어요.
어정쩡하게 공부할 생각 말고 돈이나 악착같이 벌라구요.
대학까지 나와도 새벽 시장에서 청소를 하며 고생을 면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 경험이
그렇게 만든 거지요.
학교를 보내주는 대신 아버지는 제게 이 공장이 망하면 저 공장으로
열심히도 일자리를 구해다 주셨어요.
문을 닫은 냉장고 공장 다음으로 옮겨간 곳은 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열다섯이 된 저는 이번엔 형 이름을 빌려 들어갔지요.
처음엔 소가죽 원단을 나르는 일에서 시작했지만 곧 프레스공이 되었답니다.
일당도 더 받고 대접 받는 기술자가 되고 싶어 고참들 어깨너머로 익히고
쉬는 시간에도 몰래 연습을 한 덕이죠.
그러나 남들보다 빨리 프레스공이 된 행운은 사고까지 막아주진 못했어요.
육중한 프레스 기계가 제 손목뼈를 누르며 쳐버렸거든요.
완전히 으스러진 건 아니었기에 처음엔 타박상 정도로밖에 보이질 않더라구요.
내 몸을 소중히 돌보고 아끼기엔 시간도 돈도 없었고 법과 병원은 멀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을 줄 알았는데 한두 달이 지나도 회복은 커녕
손목을 쓸 수가 없더군요.
이 공장에선 빳따는 안맞겠지 했는데 왠걸요.
빳따보다 더 한 권투경기가 사흘이 멀다하고 열렸어요.
반장과 고참들은 소년공들의 쉬는 시간을 뺏어 억지로 시합을 시켜놓곤
진 사람한테 아이스크림 값까지 내라고 했어요.
우리는 콜로세움에 잡혀온 전투사들처럼 싸워야 했어요.
손목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저는 프레스공에서 밀려나
포장반의 무거운 상자를 날랐는데 그런 팔로 권투 시합을 하라 하니 죽을 맛이었죠.
덕분에 저는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맞지 않고 돈뜯기지 않고 다치지도 않고 월급도 많이 받고 공장 밖을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관리직이 되자라구요.
댓글